2023. 5. 6. 20:01ㆍ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2016.10.24~2017.10.24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D+60
[네덜란드의 남, 여 혼탕 사우나] 50만원으로 시작하는 무계획 유럽여행 D+3
In Netherlands
오늘은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왜냐하면, Driebergen-Zeist에서 다음 카우치 서핑할 장소인 Amersfoort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약 15km. 걸어서 3시간 10분 걸린다고 구글맵에 나온다. Javelin은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일찍 일어나 마지막까지 아침밥을 해줬다. Ami와 여자친구도 피곤한데 일어나서 배웅까지 해줬다. 특히 Ami가 힘내라고 준 보드카 Absent는 한잔 먹은 순간 온몸이 불타올랐고 죽는 줄 알았다....
Javelin은 1km 정도는 같이 배웅해준다며 같이 걸어갔다.
오프라인 지도 앱 Maps me를 처음 사용하는 거지만 가는 길을 대충 알려줘서 안심됐다.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은 마냥 좋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특히 혼자 있는 순간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평상시 혼자 걸으면 이어폰을 꽂고 걷지만, 사색에 잠기고 싶었다.
걸으면서 느낀 것은 네덜란드는 나무가 정말 많다. 가는 길은 온통 숲뿐이었다. 공기도 좋고 인적이 없는 곳을 걸으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과정들. 지금까지 내게 도움 주신 고마운 분들. 앞으로 살아갈 나의 미래의 모습들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사실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걷고 있으니 나는 정말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정신적으로 솔직히 힘들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지금까지 잘 버텨온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아일랜드에 온 뒤로 게을러진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도 불안할 뿐이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지금 이 순간들, 아일랜드에서 생활과 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과정들은 모두 작은 부분이겠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짧은 사색의 결론은 인생은 어렵다는 것.
물론 지금은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가정도 불안정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한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여행 끝나고 해야 할 것들.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서의 계획들까지 잊어버릴까 봐 모두 적었다.
2시간을 조금 넘게 걸었고 드디어 Amersfoort 표지판이 보였다.
네덜란드에서 중세분위기가 나는 소박하고 예쁜 도시라는 것을 사전조사하고 왔기에 기대가 됐다. 걷다 보니 마을에 들어섰고 집이 대체로 삼각형과 넓은 육각형 모양의 빨간 지붕에 동화 속에 나올듯한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저 멀리서 엄마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은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흐뭇했다. 아직 암스테르담을 못 가봤지만 진지하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도착한 호스트의 집. 사실 말이 15km지 실제로 걸어보니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해서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사진 몇 장만 가지고 아파트를 찾았고 초인종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결국, 문 앞에서 기다리며 X됐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1시까지 간다고 말했고 와이파이가 안돼서 연락을 못 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호스트에게 바람맞는 건가? 온갖 생각을 했다. 마침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주민 덕에 안으로 들어갔고 혹시 몰라 호스트의 현관문을 두들겼다. 역시 응답은 없었고 일단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호스트는 오지 않았고 마침 일전에 알려준 전화번호가 생각이 났다. 로밍도 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받았다. 그리곤 10분 안으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됐다.
저 멀리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손을 흔드는 Pieter와의 첫 만남은 시작됐다. 큰 키에 사진보다 실물이 더 잘생겼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고 알고 보니 Pieter는 왼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Pieter를 원망했던 게 미안해졌다. 배고파 보였는지 점심을 먹어도 된다며 집에 있는 음식으로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은 없었고 먹다 남은 샐러드뿐이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요리했다. 영어로 쓰여있는 온갖 조미료를 넣었고 엉터리 요리실력으로 결국 망쳐버렸다.
Pieter와 잠시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내게 '네덜란드 사우나가봤냐'며 물어봤다. 나는 가본 적 없다고 말하며 '아일랜드에는 사우나가 없는데 네덜란드에는 있냐'며 물어보니 있다고 했다. 사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못 갔던 사우나가 그리웠었다. Pieter는 '가볼래?'라고 했고 마침 이른 오후라 주변 관광하기엔 어려운 시간이었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Pieter는 자신의 자전거는 3대라며 내게 자전거 한 대를 흔쾌히 빌려줬다.
약 45분 거리지만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가는 길 Pieter에게 물어봤다.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 민감한 질문이야. 괜찮아?" "물론이지 뭔데?" "왼팔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뭐야? 사고를 당한 거야?" Pieter는 2006년 뇌졸중이 걸렸고 그때부터 왼팔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차라리 불의의 사고라면 모르겠는데 이유도 모른 채 뇌졸중에 걸렸다고 하니 안쓰럽기만 했다. 몸이 불편한 Pieter는 카우치 서핑 호스트를 하고 있었고 많은 여행자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 여기까지 오는 길 사색에 잠기며 걱정을 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Pieter를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곧 사우나에 도착했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Culture Shock'는 시작된다. 남, 여가 같은 탈의실을 쓰고 같은 사우나를 사용한다는 것. Pieter는 네덜란드 사우나는 모든 곳이 남, 여가 같이 사우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곳은 백인들의 성지. 온통 백인뿐인 남, 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검은색 머리인 키 작은 동양인 남자애가 있다. 그런데 나보고 알몸으로 들어가라고? 심지어 팬티까지 벗고 들어가는 거라고 했다. 말도 안 된다. 덩치 큰 백인 남자를 보니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백인 남자의 밑에를 보고 내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는 팬티를 벗지 못한 채 수건을 두르고 쭈뼛쭈뼛 서 있었다. Pieter는 완전 알몸상태였고 밑에를 보고는 역시는 역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백인의 예쁜 여자가 알몸으로 활보하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응시했다. 양손은 수건을 꽉 쥔 채 최대한 내 것을 가렸다. 샤워할 때엔 어쩔 수 없이 수건을 풀었고 반대편에서 백인 여자가 알몸으로 샤워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창피해서 최대한 내 것을 가리며 씻었다. 사우나에 들어갔는데 또 한 번 놀랬다. 금발의 백인 여자가 요염한 자세로 다리를 쭉 뻗은 채 가슴은 하늘을 향한 채로 누워서 사우나 욕을 하는 것. 옆에 있는 남자친구도 아래쪽을 같은 방향으로 향한 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오히려 수건으로 밑에를 가리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이성 간의 예의를 배운다고 한다.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듯 남, 여 간의 육체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성 간의 육체에 대한 부족한 지식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결국은 성범죄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사우나를 하면서 자식들에게 성교육을 시키고 이성의 예의 문제를 생각한다고 한다.
사실 타올은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땀이 나니 바닥에 깔고 눕는 데 사용한다. 또 사람을 뚫어지게 주시하면 혐오감을 주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봐도 모두 알몸의 백인 여자 뿐이기에 Pieter와 대화하는 동안 집중이 안 됐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Pieter 그럼 네덜란드 사람들은 남, 여가 서로 친구인데도 같이 사우나에 와?"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기도 해. 남, 여 커플끼리도 오고 커플, 커플끼리도 같이 오기도 해. 가족끼리 오는 건 기본이고." "말도 안 돼.. 친구의 여자친구도 같이 이곳에 알몸으로 온다고? 내 여자친구의 알몸을 누군가가 본다고 생각하면 화가 날 것 같은데 그게 문화라니 정말 Culture Shock다."
정말 사우나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남, 여 노소 나이 불문 모두 알몸으로 활보하고 다녔다. 가끔 수건을 두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딱히 가리는 용도보다는 갖고 다니기 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야외에 있는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하늘은 어두워서 별이 안 보였지만 주변엔 나무가 있었고 네덜란드에서 노천온천을 하니 지상낙원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사우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우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해온 음식을 집에서 먹었다.
그리고 Pieter가 밤 8시에 시작한다는 힙합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입장료도 없고 공짜라는 말에 따라갔다. 집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장소는 큰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손에는 맥주를 들고 마시고 있었다. 이미 공연은 시작된 듯 열기는 무르익었고 무대에서는 영어인지 네덜란드어인지 모르겠지만 멋있는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힙합을 좋아하지 않지만, Pieter가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호응을 했다. 2번째 공연이 시작됐고 사람들은 모두 손을 흔들며 열기는 고조되었다.
알고 보니 오늘은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힙합 래퍼라고 한다는 사람들의 공연이라고 한다. 밤 11시가 돼서야 공연은 끝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져온 엽서를 선물로 주고 작게나마 소소한 마술을 보여줬다.
이제 내일이면 블라블라카를 이용하여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간다. 지금은 새벽 4시 30분. 아침 6시에 일어나려면 밤새야겠다.....
2016/12/22 목요일
사우나 20유로
네덜란드 음식 캅살론(KAPSALON) 7유로
하루 지출 27유로(약 30,000원)
D+Day~3 총 지출
50.7유로(약 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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